1. 전시개요전시제목: 인물, 정물, 풍경(Portrait, Still life, Landscape)
전시작가: 기슬기
전시일정: 2023년 10월 18일(수) ~ 2023년 11월 16일(목) 30일간
관람시간 : 화-금 10:00~18:30 / 토요일 13:00~18:30 / 일요일 13:30~18:30 *입장마감 18:00
(※일요일을 제외한 공휴일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전시장소 : 일우스페이스 제1전시장(서울시 중구 서소문동 41-3 대한항공빌딩 1층 )
전시문의 : T. 02_753_6502 / F. 02_6324_3400
2. 전시 서문인물, 정물, 풍경 -
문현정 (독립 큐레이터)
1) 시대의 사진예술 사진을 논하기 이전에, 사진은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한다. 사진의 성질은 모두의 손에 쥐어진
휴대폰이라는 장치를 통해 보다 가변적인 것으로 변화하였으며, 나름의 정보 값을 가진 채 끊임없이 부유하는 이미지가 되어 기존의 그것이 증명했던 사진술을 배반하는 상태로 떠돌게 되었다.
그럼에도 사진의 기록과 증거, 아카이브로서의 지위는 여전히 영속되며 끊임없이 기술적으로 재생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사진의 표면에 맺힌 상으로서의 정보, 여기서 드러나는 지시적 이미지
는 특정한 목적을 토대로 움직이며, 어떠한 것이 잔재하고 어떠한 것이 휘발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탐구를 만들어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진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어쩌면 이 질문은 사진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지금 이 시대의 매체로서 사진이 어떻게 변주되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남기고 있고, 또 무엇을 유실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진은 제각기 다른 목적을 수행하고 있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손쉽게 유통되는 사진조차도 나름의 욕망을 투사한 대상으로서의 정보 값을 가진 채 부유한다. 이에 남겨진 사진은 때로 어설프기도, 매끄럽기도 한 형태로 각기 다른 존재감을 부여받으며 사진이라는 매체의 본래적 성질과 목적에 대한 다양한 의문을 파생시키고 있다.
기슬기는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주제로 작업을 진행해왔으며, 최근에는 사진의 물성과 그것을 둘러싼 공간, 그에서 파생되는 일루전 사이의 관계를 탐색한다. 그는 이번 전시«인물, 정물, 풍경»에서 사진이라는 매체의 본질, 그중에서도 지금 이 시대의 사진이 포괄할 수
있는 실재(reality)와 그 속에 숨겨있는 층위, 그 과정에서 획득되는 환영(illusion)에 대한 이야기를풀어낸다.
작가는 가변적 일상 사진에서 낚아채어지는, 디지털의 픽셀 안의 가벼운 위계 속에 표류하는 사진만이 드러낼 수 있는 리얼리티에 집중한다. 그는 기술적으로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는 사진이아니라 오히려 우연에 의해 묻어 나오는 흔적으로서의 지표가 서술하는 숨겨진 층위를 파헤치기
위한 작업을 연구했다. 그는 사진의 조건 내부에 존재할 수 있는 여러 개념, 이를테면 이미지의가장 바깥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실재성과 더불어 그 사이에 숨어있는 잠재적 층위가 어떻게 표
면으로 드러날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이에 따라 부차적인 정보로 치부되던 실재성을 지워내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면에 부각함으로써 사진이 획득할 수 있는 환영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른 바 예술 사진이라 불리는, 예술의 제도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사진은 그 접근과 표현에 있어 각기 다른 방식을 표출하며 나름의 존재를 건설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가가 촬영하는 사진은 기존의 ‘잘 찍은 사진'을 거부하며 피사체가 위치한 환경적 조건을 여실히 드러내는 채로 더 명료한 의미에서의 현실감각을 획득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이번 전시를 통해 드러내는 사진은 보다 얄팍한 사진을 통해서, ‘잘 찍히기 위해' 사진의 역사 속에서 배제되어 왔던 리얼리티와 환영
을 구조화하고 있다.
2) 피사체가 된 회화, 그 외부적 요건전시는 명료하게 ‘회화’를 피사체로, 그리고 그것을 감상할 때 경험되는 ‘외적 요소’를 촬영한 사
진을 보여준다. «인물, 정물, 풍경»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한국 근대 구상 회화가 역사적 소재로삼아 왔던 인물과 정물, 그리고 풍경이 담긴 작품이 주된 소재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회화적
재료는 사진의 역사 속에서도 유사하게 등장해왔던 것으로, 생동하는 대상으로서의 인물과 정적오브제로서의 사물, 그리고 내부와 외부를 포괄하는 공간적 대상으로서의 풍경이 넓은 의미에서
사진의 재료적 주제를 포괄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회화를 ‘찍고자 한' 이유는 먼저 그것이 최근의 국내 미술계, 그중에서도 현대 미술관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매체인 동시에, 다수의 관객을 동원하여 유포되는 휘발적 사진의 모태로서 현상을 역설하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놓인 회화를 촬영한다는 것은 보다 시대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포괄하는, 지금 이 시대의 예술 작품이 이미지로서 유통되고 소비되는 방식이 기존의것과는 다른 조건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작가는 기존의 회
화가 가지고 있었던 ‘환영주의'적 실체, 예컨대 외부 세계를 충실히 모방함으로써 획득되는 회화의 환영이 이미지로 배포되면서 어떻게 그것을 잃게 되는지를 서술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작가는 회화를 특정 예술 작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 표면의 ‘물성’을 담아내기
위한 피사체로서 회화를 선택한다.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은 그것을 둘러싼 환경적 요소 - 이를테면 액자나 조명에 의한 반사광이나 그림자, 유리에 우연적으로 비추어지는 현장의 인물과 사물,
풍경 등 - 를 내재한 채로 보다 날것의 현실 감각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회화는 전시장 안에서 작품으로서 존재하는 동시에 환경을 담아내는 매질로서의 표면이 되기도 하며, 이를 기록하는 관객
의 욕망이 담긴 사진은 그 대상 자체를 담아내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의도치 않은 리얼리티를 내재한 채 표류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작품을 보는 것에 방해되는 요소를 일부러 정보 값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이
는 사진의 내부에 숨겨진 여러 층위(layer)가 압축된 상태로서 표면화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를 만약 사진이 촬영한 특정 피사체가 가지고 있는 잠재된 실체성이라고 바라본다면, 우리
는 그것이 다시 사진을 통해서 드러날 수 있게 되는 지점을 알아차리게 된다. 사진이 숨겨놓았던층위가 드러나는 순간은 회화가 환영을 잃었던 것처럼, 역으로 사진이 환영을 획득하게 되는 상
황을 역설한다.
근대 회화에 드러나는 도상은 나름의 역사적 관념을 통해 특정 프레임 안에 대상을 위치시키고
있으며 어떤 형식과 구조를 차용하던 이를 구현해 내는 방식은 그 매체를 환영주의로 이끈다. 그러나 기슬기가 촬영하는 사진은 오히려 회화 그 자체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얼룩지게 만듦으로써
그 실체가 가지고 있던 환영을 배제하고, 오히려 사진이 다시금 획득하게 되는 현재성 혹은 실재성을 가시화하고 있다.
3) 회화의 환영, 사진의 환영기슬기는 이른바 ‘잘 찍은 사진’은 리얼리티를 상실한다고 말한다. 기록의 도구로서의 사진은 오
로지 피사체만이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만들어진다. 색온도의 보정이나 불필요한 대상을 지워내는등의 디지털 - 후보정과 같은 과정은 사진을 이상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어낸다. 그에 따르면 사진
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보다 매끄러운 상태를 획득하며, 그 본래적 환경 요건을 둘러싼 리얼리티, 즉 실재성을 유실하는 상태로 남게 된다.
«인물, 정물, 풍경»은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을 촬영하는 단계에서 보다 부차적이고 외부적인 요소
로 작동하는 환경적 우연성을 포착하고 있다. 전시는 인물화, 정물화, 그리고 풍경화의 세 가지섹션을 느슨하게 나누어내며, 나름의 구획 속에서도 유사성을 드러내는 사진의 군집을 통해 각기
다른 현장으로서의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관람에 방해가 되는 요소 – 회화의 프레임,작품의 질감, 조명으로 인한 빛과 자연광, 그림자, 작품에 반사되는 전시장 내외부의 인물과 사물,
풍경 등 - 를 적나라하게 노출한다. 이미지는 그가 명했던 ‘잘 찍은 사진'을 의도적으로 비껴나간리얼리티를 그대로 응집하고 있다. 납작한 인쇄물로 벽에 압착된 사진은 두께감마저 상실한 채
물리적 부피를 소실한 정보 값을 여실히 드러내며, 응축된 표면에 다층위적 정보 값을 머물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회화의 프레임 속 본래 이미지는 그 지위를 잃고 사진의 새로운 프레임 안에서 부차
적인 대상이 되어간다. 이로써 어떠한 대상의 재현을 근간으로 했던 근대 회화의 환영주의는 파괴되며, 사진은 그 내부에 매복되어 가려져왔던 표면 아래의 여러 층위를 드러내게 됨으로써 그
자체로서의 환영을 획득하게 된다. 납작한 표면은 이미지가 함축하는 모든 층위를 하나의 얄팍한면으로 묶어내고 있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 표면을 비판적으로 꿰뚫어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슬기의 사진은 그 원본의 대상이 가지는 이미지를 재현하는 자기-지시적인 약호를 보임과 동시
에, 그것이 은유하는 다른 상을 포함한 이미지를 재생산함으로써 지금 이 시대의 부유하는 이미지를 다시금 복기한다. 피사체로서의 회화는 물성을 가진 실체로서 잠재하고 있는 성질과 그것이
위치한 곳에서 발생되는 리얼리티를, 사진으로 인하여 다시금 획득하게 된다. 회화 작품이 전시됨으로써 부여받는 ‘실재'하는 정보 값은 이제 사진을 통해 이미지 그 자체보다 높은 권위를 부여받
게 된다. 이로써 시대의 사진은 환영을 얻게 되었다.